시선을 사로잡은 작품
작년 아트오앤오, THEO 갤러리에서 제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았던 작품 — 박그림 작가의 심호도_간택. 전통적이면서도 세련된 느낌에 "이 작가 성공하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년 10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작가 소개
박그림 작가는 1987년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불화(佛畵)에 관심이 깊었습니다. 집안 형편으로 진학을 포기하고도 불화 스승을 찾아가 직접 조선 탱화 형식을 배우고, 6년 뒤 동국대 불교미술과에 입학해 고려불화 형식을 중심으로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재학 시절 "이 시대에 맞는 불화를 그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종교화의 기법을 차용하면서 내면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기법 — 배채법과 육리문법
그의 그림은 대부분 "비단에 담채"로, 이는 배채법을 뜻합니다. 비단의 뒷면에 채색하고 앞면에서 은은히 색이 배어 나오게 하는 고려 시대 불화와 조선시대 초상에서 많이 쓰였던 전통 기법이죠.
얼굴 표현 역시 세필로 피부의 미세한 결까지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육리문법을 사용합니다. 기법적으로는 완벽히 전통을 답습하지만, 그가 다루는 주제는 꽤나 발칙합니다.
심호도 시리즈
핵심 연작인 심호도 시리즈는 불교의 '심우도' 설화에서 출발합니다. 소년이 소를 찾아 헤매며 깨달음에 이르는 이야기에서 '소'를 보살로, '소년'을 호랑이로 바꿔 표현했습니다.
호랑이는 단군 신화에서 결국 인간이 되지 못하는 불완전하고 미완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이 양가적이고 모순적인 모습이 작가의 퀴어 정체성과 일치한다고 느껴 페르소나로 선택했다고 합니다.
나의 시선
역사학과 출신이라 그런지 전통을 구현하면서 현대식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박그림 작가의 그림은 전통 기법을 정확히 고증하면서도 꽤나 파격적인 소재를 접목시킨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무작정 자극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하나의 작품에 여러 서사와 상징을 꼼꼼히 숨겨 넣어 화폭의 오브제 하나하나까지 살펴보게 만드는 재미가 있습니다. 2026년엔 어떤 모습으로 우리와 만나게 될지 기대됩니다.